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BC 청룡 (문단 편집) === 기타 === || [[파일:청룡 트윈스.png|width=100%]] || ||<:> {{{#ffff00 트윈스의 시작, 청룡 }}} || * 창단 직전에 팀명 공모를 했는데 '''MBC 드래곤즈'''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 당시 [[MBC]]의 사옥이 있던 중구 정동[* 1970년대 [[경향신문]]과 [[MBC]]가 한 식구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쓰던 사옥이다.]이 과거부터 '용마루'라고 불렸다는 점 때문에 팀 이름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1&contents_id=6357|그에 대한 배경 설명.]] 그러나 당시 지나친 외래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던데다 [[일본프로야구|이웃나라 리그]]에 [[주니치 드래곤즈|드래곤즈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팀]]이 있다는 이유로 드래곤즈 대신 '청룡'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롯데]]는 일본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동명의 팀]] 이름이랑 똑같이 지었던데--- 실제로 그런 인연으로 1982년 MBC 청룡 창단 시절부터 [[주니치 드래곤즈]]는 자매결연 구단이었으며, 이후 이 팀의 후신인 [[LG 트윈스]]와도 자매결연 구단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팀명을 한자로 지은 팀으로도 기록된다. * 팀 자체의 승률을 떠나서 '''드래곤 간지'''와 서울이라는 입지 덕분에 [[해태 타이거즈]]와 함께 그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팀이기도 했다. 나일론으로 만든 싸구려 청룡 바람막이를 국딩들한테 자주 무료배포했던 이유도 있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 어린이 회원 모집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며 팬 확보에 나섰는데 서울이라는 연고 특성상 자연스럽게 많은 팬을 끌어모을수 있게 된 것. * 모기업이 방송사였으므로 [[문화방송]]은 당연히 MBC 청룡 경기를 무지하게 자주 중계해주었다. 그 덕에 자회사인 [[엠스플]]에서 1980년대 프로야구 프로그램을 할 때만 되면 잘 틀어준다. 물론 1980년대 프로야구 중계는 사실 MBC보다 KBS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오죽하면 한때 KBS의 별명이 "Korean Baseball System"이라고 불렀을 정도. 괜히 전두환의 3S에 프로야구가 들어가는 게 아니다.[* [[이계진]] 전 국회의원(전 KBS 아나운서)의 자서전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에서 발췌.] * [[MBC|모기업]]이 제작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유명 선수들이 종종 출연한 바 있다. 1980년대 유명 프로그램이었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명랑운동회'나 국민학생 대상의 어린이 쇼 프로그램 '야! 일요일이다!' 등에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유튜브에도 당시 제작된 회차의 일부 영상이 남아있다. * 주로 전지훈련은 일본으로 많이 간 것 같다. * MBC가 중계할 때는 'MBC 청룡'이라는 풀네임을 자유롭게 언급했지만 [[한국방송공사|KBS]]가 중계할 때에는 '''죽어도 경쟁사 이름을 호명해주기 싫은 고집 덕택에''' 그냥 '서울 청룡'이라는 식으로 명명했다.[* 역시나 [[이계진]] 아나운서의 책. 이외에도 많은 KBS 출신들의 증언이 한가득이다. 사실 방송국 내에서 타 방송사 언급이 자유로워진 것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아서, MBC 청룡이 인수된지 한참 후인 2000년대에도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는 대놓고 타 방송사를 언급하기가 어려워 고육지책으로 X본부 등의 용어를 쓰는 게 고작이었다. 하물며 그것보다도 훨씬 방송문화가 보수적이었을 80년대에, 유일한 라이벌 방송국 이름을 경기 내내 호명하는 것은 KBS 입장에서는 자존심 때문이라도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SBS]]는 MBC 청룡이 LG 트윈스로 바뀐 1990년 이후에 생겼기에(1991년 12월 9일 개국) 청룡 시절 경기는 단 한 번도 중계한 적이 없다. ] 공통적인 것은 '청룡'이라는 명칭이 강조됐다는 점. 더불어 연고지인 서울을 적극적으로 많이 내세웠는데, 원정 유니폼 가슴에 '서울'을 한글과 영문으로 박았는가 하면, MBC의 M과 서울의 S를 겹친 캡로고를 썼다. * '''역대''' 한국프로야구 팀명 중에서 유일하게 팀명(스폰서 및 모기업 명칭은 제외)이 영어가 아닌 한자어인 팀이기도 하다. 다만 당대에는 프로야구를 제외하면 딱히 특이한 사항은 아니었다. 민속씨름의 경우에는 1990년대 말 이전까지는 팀 이름에 영어나 외래어를 일절 쓰지 않았고, 프로축구의 경우에는 팀 이름에 영어나 외래어를 쓴 팀과 순우리말, 한문을 쓴 팀이 혼재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일양 원비, 현대 코끼리, 삼익가구 사자, 부산조흥상호신용금고 호랑이, 국민은행 까치, 현대 호랑이, 유공 코끼리, 럭키금성 황소, 일화 천마 등이 있었다. 이후로는 민속씨름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프로축구는 지역명을 먼저 사용하는 것이 용례가 되고, 팀 이름에 FCXX로 짓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줄어들었지만 WKBL의 [[춘천 우리은행 한새]]와 V리그의 [[서울 우리카드 한새]]가 있었다. 이후 두 팀 모두 위비로 팀명이 바뀌었다. * 자사 야구팀이라 그런지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온 야구광 캐릭터가 응원하는 팀으로도 나온 적이 있다. 심지어 [[http://www.gameone.kr/club/?club_idx=27074|MBC 내부의 직장인 야구단 명칭도 MBC 청룡이라고 한다.]] * 1982년 4월 15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1경기 7실책을 저질러 KBO 흑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었다. 이 흑역사는 [[2014년|32년 후]] [[SK 와이번스]]에 의해 [[SK 와이번스/2014년/5월/1일|희석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경기 모두 상대가 [[해태 타이거즈|타이]][[KIA 타이거즈|거즈]]다.] * 1983년 1차 지명을 받았고 1985년에 MBC 청룡에 입단한 투수 [[김용수]]가 [[1999년]] [[4월 19일]] [[LG 트윈스]]에서 영구결번되었다. * [[LG 트윈스]] 구단은 MBC 청룡 관련 이벤트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개별적으로 청룡 유니폼[* 1986-89 유니폼이 대부분이다.]을 구입하여 직관하러 오는 팬이 아직도 상당수 있으며, MBC 청룡의 흔적은 사라진 지 30년을 훌쩍 넘긴 2020년대 초반인 현재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 1983년 후기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해 [[1983년 한국시리즈]]에 나갔는데 이 한국시리즈가 MBC/LG 프랜차이즈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다. * [[서울특별시]]라는 최대 규모의 연고지와 서울 출신의 많은 스타들을 보유했으나, LG로 바뀌는 1990년까지 포스트시즌은 1983년 단 1회에 그쳤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무 4패로 패했기 때문에 MBC-LG 프랜차이즈의 한국시리즈 첫 승은 1990년 1차전이다. * 8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이 단 한 번밖에 없지만 이는 당시 포스트시즌 제도의 영향이 크며, 5할 승률을 넘긴 시즌이 4시즌으로 절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MBC 청룡을 마냥 약체 취급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 KBO 사상 최초로 [[몰수 게임|몰수패]]를 당한 구단이다. * 유난히 [[교통사고]]를 당했던 선수들이 많았던 팀이다. * 원년 선수이자 원년 [[KBO 골든글러브]] 수상자였던 [[김용운(야구)|김용운]]은 은퇴 후 2005년에 대전에서 마산으로 이동하던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 [[김정수(1960)|김정수]]가 1986년 겨울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그의 승용차에 함께 탑승하고 있었던 1984년에 입단했던 [[김경표(야구)|김경표]]는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고 1990년 초에 은퇴하였고, 은퇴 이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동승자였던 [[안언학]] 역시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91년에 은퇴하였다. * [[김건우(1963)|김건우]]는 투수로 뛰어난 활약을 하다가 1987년 시즌 후반에 교통사고로 두 팔에 골절상을 당했다. 이후 타자로 전향했지만 그다지 좋은 활약을 하지 못했고 1997년에 은퇴하였다. * KBO 사상 최초로 '부정선수' 투입 사례를 만들었던 구단이기도 하다. 1983년 5월 17일 롯데전 9회말 2아웃 상태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유승안 선수 대신 조호 선수를 대주자로 투입시켰고, 와중에 다음 타자였던 김정수의 안타로 진루까지 한 상황에서 조호 선수가 25명 출전선수 명단에 없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부정선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렇다 할 규칙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심판은 그냥 쿨하게 아웃을 선언했다. 당시 상황이 9회말 2아웃이었으므로 경기는 그 자리에서 끝나버렸다. * 원년 개막전과는 인연이 깊던 팀으로 만루홈런 친 타자(이종도), 만루홈런 맞았던 투수(이선희), 최초로 삼진당한 타자(천보성)까지 전부 MBC/LG를 거쳐갔다.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는 기업간의 라이벌 의식으로 트레이드가 2000년대까지 거의 없었지만 MBC 시절에는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 2020년대인 현재까지 역대 프로야구 팀들 중 둘밖에 없는, 팀명이 단수인 팀이다. 2014년까지는 유일했으나 2015년에 [[kt wiz]]가 창단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